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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니지스토리

공병 혐오증

by 포켓단 2024. 2. 2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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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깟 1,000원이 뭐라고

 

며칠 전에 공병을 가져온 사람이 있었다. 소주 10병을 가져왔고 1,000원을 드렸다. 하지만 그 사람은 갑자기 자기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공병을 챙기고 달아났다. 직원은 내 지시에 따라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도착한 경찰과 통화를 했는데 경찰의 질문은 날 당황하게 했다. "손님이 의도적으로 그러신 건가요? 아니면 모르고 그러신 건가요?" 나는 황당했다. 손님은 분명 절도를 한 거나 다름없는데 의도를 물어보고 있다. 그래서 나는 당연히 의도적으로 한 거라고 대답했지만 그 질문이 너무 황당했기 때문에 "의도적이지 않으면 달라지나요?"라고 역으로 질문했다. 그 경찰은 의도적이지 않았다면 수사를 안 할 거라고 했다. 정말 황당했지만 어쨌든 나는 의도적이라고 대답을 했고 CCTV 확보해 주시고 수사를 요청했다. 그러나 경찰은 역으로 CCTV를 나보고 백업해서 경찰서에 방문하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. 내 경험상 경찰은 사건이 일어나면 CCTV 확인 후 영상을 찍어간다. 그러나 이 경찰은 알겠다고 했지만 결국 CCTV를 확인조차 안 하고 그냥 갔다. 그리고 며칠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르바이트 직원과 나보고 경찰서에 출석해달라고 요청했다. 심지어 신분증까지 요구한다. 이게 정말 맞는 건가?

 

 

난 공병을 매우 싫어한다. 공병을 가져오는 사람 역시 싫어한다. 보통 손님이 가져오는 공병이 더러운 건 둘째 치고 싫어할 만한 이유가 차고 넘치는 데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, 기억나는 공병 관련 안 좋은 기억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.

  • 공병을 일부 가져오고 우리 점포의 공병을 빼서 본인 가방에 넣은 다음 본인 것이라고 속였다. CCTV를 보여주고 다신 오지 말라고 했다.
  • 공병을 하도 많이 가져와서 과도한 부피 문제로 밖에 놓는데 직원이 밖에서 공병을 세고 있는 동안 중학생 여러 명이 후문으로 들어와 담배 6만 원어치를 훔쳐 갔다. 경찰에 접수됐고 6개월 전 일이지만 아직도 배상받지 못했다.
  • 해외 맥주는 대부분 라벨에 금액이 쓰여 있지 않다. 고로 0원인데 칭따오 맥주가 초록색인 점을 이용해 테라 맥주병과 섞어서 가져온다. 추궁하면 당연히 몰랐다고 한다.
  • 결제가 밀려 뒤늦게 공병을 세러 나온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"너는 애미, 애비도 없냐?"라는 말을 했다. 기다리게 했다고 병을 바닥에 던지는 사람도 봤다.
  • 공병을 너무 많이 받아 바구니가 부족할 지경이어서 잠시 못 받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동영상을 찍어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.

 

편의점 직원에게 일하면서 가장 싫은 업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고민도 안 하고 공병이라고 대답한다. 내가 그동안 겪고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위에 적었지만 아마 직원들이 겪은 에피소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. 공병만 하면 아주 진절머리가 나는 것이다. 그러나 내가 더 화가 나는 점은 공병을 강제로 받으라고 법으로 정해놓고 막상 그것을 훔쳐 갔을 때나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 법적 보호를 전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. 

 

공병값 1,000원 가지고 호들갑 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왜 누군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'절도'라고 정의하는 걸까? 법적 보호를 아예 받을 수가 없다는 점이 날 절망하게 만든다.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집단절도사건을 보며 상대적으로 안도를 느끼고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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